[제3회 세종 서산부인과 글쓰기 대회] 2등 당선작 임○우 / 그동안, 바로 지금, 앞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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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 산부인과 작성일 25-08-04 15:32 조회 70회 댓글 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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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세종 서산부인과 글쓰기 대회] 2등 당선작 임○우
그동안, 바로 지금, 앞으로도 감사합니다.
Ⅰ. 들어가며 – 임신과 출산, 그 명작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이 글은 한 여자의 남편이자 예비 아빠의 입장을 담았습니다. 산부인과 내원 당사자만이 아닌, 보호자가 보고 느낀 임신 전후의 세상을 그렸습니다.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프러포즈라는 거사(?)를 치른 이후로, 스·드·메라 일컫는 결혼식이나 그 후의 출산 준비 과정 전반에 걸쳐 ‘메인’이라 할 만한 주체는 거의 늘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눈을 사로잡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아내의 마음을 공략한 드레스로 버진 로드를 걸었으며, 출산에 대비한 산부인과 진료나 각종 서비스 선택도 아내의 취향과 여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산부인과 내원 또한 아내가 주연, 남편은 조연인 에피소드로 가득찰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보호자만이 절실히 보고 느끼게 되는, 단순히 넘기기에는 크고 소중한 산부인과 경험도 많다는 것을 (당연히 난생 처음) 실감하고 있습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아내와 손잡고 처음 산부인과 문을 두드렸던 2025년 봄부터 여름까지에 걸친, 남편이자 보호자의 경험을 스스로도 곱씹고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세상 그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받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두가(심지어 남편 본인조차도) 아내가 메인이라고 간주하는 출산 준비 과정을 슬기롭게 밟아 나가고자 하는 이 세상 모든 남편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Ⅱ. 산부인과 출석 0기 – 은밀히 시작된 인연
1. 한 번의 이별, 남겨진 이들의 상처
내가 아내와 손잡고 산부인과에 간 것은 올해 4월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산부인과 진료는 사실 그 전부터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로 숨기는 것 없이 살자고 약속했지만 임신만큼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남편에게조차 비밀로 하고 싶었나 보다. 나도 모르던 첫 번째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정확히는 왔다‘갔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 사실을 알게 된 과정은 우울하고 심각했다. 장거리 일정을 소화하던 어느 주말, 아내는 자신을 차로 데리러 오지 않고 지하철로 오라 한 것이 서운했다며 이 이야기를 덧붙였고, 나는 2배로 나쁜 놈이 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아내는 나 몰래 ‘얼리임테기’까지 사용하며 임신 여부를 체크하고 있었고, 2줄이 뜨자 혼자서 산부인과를 다녀왔다고 한다. 즉 비공식적으로는 이 때가 우리 가족의 첫 산부인과 내원인 셈이다. 아직 초음파로도 잡히지 않는 작고 소중한 생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며칠 뒤 다시 보아야 한다는 의사 소견에 벅찬 마음으로 다음 진료를 기다린 아내였으나, 돌아온 것은 ‘화학적 유산’이라는 결과였다.
아내는 이 모든 이야기를,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차로 데리러 오지 않았냐고 따지는 맥락에서 전달했고 그 직후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침울한 분위기를 감내해야 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우리의 첫 번째 아이는 그렇게 떠나갔고, 아내는 혹여나 같은 슬픔이 되풀이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한동안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2. 두 번째 인연, 모든 게 처음인 부부는 한없이 두렵다
다행히 아내의 걱정은 또 다른 설렘으로 덮어졌다.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는 소식은 이번에도 나에게 다소 늦게 전달되었다. 이전의 아픔을 겪은 아내는 더더욱, 뱃속에 아이가 자리했다는 그린 라이트를 확보한 다음에야 나에게 알리고 싶었나 보다.
내가 접한 첫 소식은 산부인과에서 찍어준 초음파 사진과 함께였다. 처음 보는 초음파 사진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흑백사진에 불과했지만, 가슴이 벅차오르기에는 충분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산부인과가 벌써부터 익숙하게 느껴졌다. 비록 나는 없었어도 우리 아기가 엄마와 같이 몇 번이고 드나들었을 산부인과 일정이 나에게도 손짓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겠지만, 백 퍼센트 슬프거나 기쁘기만 하기보다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아기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지금부터 펼쳐지는 모든 경험이 난생 처음이라는 막연함이 가져오는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상 스·드·메 2탄이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정보를 얻기는 쉽지만 그 무수한 정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강박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결코 동시에 다 이룰 수 없는 수많은 선택지들이 저마다 ‘이걸 꼭 해야 돼요, 안 하면 후회하더라고요’라며 손을 들고 있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이라는 이유로 긴가민가 하면서도 세간의 취향을 소신껏 걸러내기 어려웠는데, 이번엔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선택의 미로에 선 것이다.
이런저런 검사에 난생 처음 보는 준비물들, 아직도 모르면 거의 바보취급 당한다는 수많은 혜택들(인지 숙제인지 모를 것)…, 진짜로 꼭 필요한 건지 모르겠는데 한번 봐버린 이상 안 하긴 또 찝찝한 선택지 사이에서 헤엄쳐야 하는 상황, 열심히 보고 들을수록 역으로 점점 바보가 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Ⅲ. 산부인과 출석 1기 – 섬세하게 따뜻한 하이터치(High Touch)의 축복
1. 의사라서 기대고 싶지만, 의사이기에 어려운 휴머니즘
나는 남들에 비해 병원을 더 많이 두려워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스스로 병원을 찾지는 않는 성격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특유의 예민하고 감성적인 성향 탓에 의사의 무미건조한 진료로 혼자서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병원을 찾을 때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지고 위축되게 마련이다.
안 좋은 쪽으로 평상시와 다른 내 몸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의사들은 얼마나 힘드시겠냐는 공감성 멘트는 거의 하지 않고 (대체로 시선도 환자를 향하기보다는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약을 얼마간 얼마큼 드시라, 다음 진료는 이때쯤으로 하겠다 등의 정보만 간결하게 통보한다. 수십 분을 기다려서 겨우 만나게 된 의사의 진료가 이렇게 2분 만에 끝나고 나면 가끔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허탈감이 불현듯 밀려오곤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비록 무미건조한 진료에 상처받지 않을 만큼 강철 멘탈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간 내가 만난 의사들이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로서는 한 명 한 명의 환자에게 크게 몰입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의사도 사람이니 체력이나 정신력의 한계가 있을 것이고, 이번 환자에 대한 각별한 공감과 배려는 3시간 후 찾아오는 다른 환자에게 쏟을 에너지를 미리 당겨 쓰는 것과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환자 한 명만을 돌보는 세상이라면 몰라도, 갈 때마다 내 앞뒤로 환자 수십 명이 줄서 있는 병원을 지키는 의사는 모두를 돌보기 위해 역으로 모두에게 건조하게 되는 길을 골랐을 것이다.
환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알 의사가 따스한 휴머니즘을 발휘할 줄 모를 리는 만무하고(아마 잘 아는 만큼 이해의 폭도 넓겠지만) 나만의 의사가 아닌 모두의 의사이다 보니 역으로 휴머니즘과 거리를 두게 되나 보다. 나처럼 마음이 여린 사람에게는 조금 불리한(?) 여건이다.
2. 다행, 그리고 감사
그렇기에 산부인과 내원 또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자신의 몸 상태, 뱃속의 아이를 위해 하면 안 되는 것과 해도 되는 것(혹은 해야 하는 것) 등 의사쌤에게 물을 질문들을 미리 준비하고 검진 날짜만을 기다렸지만, 나는 경험에서 유추되는 의사의 무미건조하고 간결한 반응에 아내가 상처받을까 미리 걱정되었다.
내가 처음 동반한 진료 당일 대기실에 있는 동안 걱정은 더욱 커졌다. 미리 예약하고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손님이 너무 많아 우리 차례가 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예약한 시각보다 30분 이상 늦어졌음에도 아내의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았다.
나와 아내가 들어가게 될 진료실에는 내가 본 것만 해도 이미 10명이 넘는 환자가 드나들었다. 마침내 아내의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퀭한 눈빛을 하고 한 번에 최소한의 체력만 쓰는 방향으로 숙련된 의사를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극단적으로는, 이미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의 비관은 기우였던 것 같다. 의사쌤의 첫인상은 우리가 오늘의 첫 손님인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자상한 모습이었다. ‘아기 상태는 어떻고, 몇 주 뒤에 오세요’ 정도만 이야기하고 바로 끝날 것 같았던 진료는 꽤나 장시간(!) 동안 친절하고 자세하게 이루어졌다. 아내는 다른 사람에 비해 질문이 많은 편인데, 의사쌤은 그 세세한 질문들에 귀찮은 티 내지 않고 답변해주셨다. 체력과 시간에 쫓겨 진료 회전율을 높이려 하는 듯한 내 경험 속 다른 의사들과는 분명 온도차가 있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후반부를 보면 항암치료 중인 남편 관식을 어떻게든 호전시켜 보고자 애쓰는 애순의 절실함이 묘사되는데, 애달프고 다급한 애순과는 달리 의사를 포함한 관계자들은 병원의 규칙에 쉽사리 맞추지 못하는 애순에게 냉담할 뿐이다. 치료에 좋은 걸 전부 해보고자 이것저것 물어보려는 애순에게 ‘인터넷에 나오는 거 다 물어보실 거냐’며 말문을 잘라버리는 의사의 매정함은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묘사된 의사의 모습은 조금 과장됐을지언정 내 머릿속에 있던 의사의 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를 보고 감정이입이 되어서였을까, 의사쌤의 친절한 진료가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예상에 없던 선의를 받아서인지 두 배로 감동적이었다.
3. 훈수와 하이터치(High Touch)는 한 끗 차이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간 것은 지금까지 4번, 아내 혼자서 선생님을 만났던 것까지 합친다면 이미 열 번 정도이다. 산부인과는 나의 자동차가 주요 목적지로 자동 설정할 만큼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출산할 때까지 보면 지금보다 배 이상 진료를 보게 될 것이다.
연인도 오래 사귀면 서로가 변했다며 서운해하는 경우가 있듯이, 처음에 좋았던 진료 스타일도 회를 거듭할수록 불친절해지거나 건성으로 바뀌는 것을 아닐지 걱정이 되었었다. 다행히도 의사쌤은 한결같았다.
4월에 처음 느꼈던 따뜻하고 친절한 진료가 6월이 되어도 여전히 푸근하고 폭신했다. 처음에는 유일한 환자를 대하는 것처럼 집중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여러 질문에도 알기 쉽게 답해주는 의사쌤의 열정에 감사했는데, 지금은 그 열정이 시간이 흘러도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불타오름에 감사하다.
그런데 어느 잠 못 이루는 밤에 무심코 생각해보니, 내가 감사할 이유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의사쌤은 단순히 친절한 게 아니라, ‘섬세하게’ 친절했기에 나와 아내의 마음이 더욱 편안할 수 있었다. 무대를 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꿔보면, 무심함의 정 반대 끝에 있는 훈수와 잔소리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도 많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돈 아껴야지 등등 (실제로 유형의 지원을 해줄 것도 아니면서) 과도하게 잔소리하는 친척들 때문에 짜증났다는 이야기는 종종 회자된다. 즐겁게 놀자고 모인 여행지에서 숙소 편의시설이 아쉽다거나, 관광 콘텐츠가 너무 단편적이라는 등등 자기가 일정 짜면 이렇게 안 했을 거라는 식으로 김새는 발언을 하는 빌런들 이야기도 인터넷상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에 짜증을 느끼는 이유는 상대가 관심을 너무 억세고 부담스럽게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의사쌤이 나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출산 준비 팁을 자기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쭉 풀면서 왜 이런 것들을 준비 안하셨냐, 지금이라도 당장 하시라는 식으로 진료했다면? 이것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한시라도 빨리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무심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훈수 모드로 가지도 않고 적정선에서, 섬세하게 따뜻한 정을 베풀며 환자와 보호자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의사쌤을 담당의로 만났다. 그 덕에 출산과 육아라는, 막연하고 걱정스러운 앞길을 그래도 걸어볼 만한 길이라 생각할 힘이 생긴다.
적정선을 지키는 휴머니즘은 상대를 가슴 깊이 배려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관심이 없으면 기계처럼 말하게 되고, 관심이 조금 있지만 깊게 발 들이기 싫으면 가공되지 않은 여기저기의 정보를 백화점식으로 털어놓고 만다. 말하는 입장이 아니라 듣는 입장까지 생각한다면 무심코 백화점식으로 털어놓기만 할 수도, 그렇다고 무심하게 지나칠 수도 없게 된다. 셰프의 피땀이 깃든 요리처럼, 할 말을 갈고 닦아서 조심스럽고 진정성 있는 휴머니즘으로 만들어 내놓는다. 이런 하이터치(High Touch)는 가족끼리도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소통인데, 그 흔하지 않은 하이터치를 산부인과 의사쌤에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Ⅳ. 나가며 – 의사 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우리 아기가 7주차‧9주차‧12주차‧16주차일 때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던 초보 남편 겸 예비 아빠입니다. 선생님은 아마 제가 누군지 기억하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선생님의 pc 모니터 바로 뒤에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았고, 진료 내내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제 아내가 얼리임테기를 들고 남몰래 기대했다가 좌절했던 그 시절, 선생님은 이미 아내의 슬픔과 고민을 함께해주셨습니다. 저와 선생님의 첫 만남은 지난 4월이었지만, 그간 아내가 지나가듯이 이야기하던 임신 꿀팁의 90퍼센트 이상은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비롯한 것이더군요. 혼자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다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을 아내를 잘 보듬어주시고 이어서 건강한 아이가 깃들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어쩌면 저를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6월에 선생님을 찾았을 때, 아내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셨고, 아내는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며 저를 당황시켰죠. 심지어 진료 막바지에 선생님이 궁금한 거 있냐고 하시자, 아내는 또 다시 저를 가리키며 “아내한테 잘하라고 말 좀 해주세요”라고 강력 건의(?)했지요.
남편으로서 이런 상황은 참 어렵습니다. 뱃속에 아이를 품고 온갖 몸고생‧마음고생하는 당사자가 아내니까, 그런 아내의 불안정한 정서변화나 갑작스러운 짜증에 너무 동요하지 말고 최대한 맞춰줘야 한다는 걸 알아도 실천하기가 참 고되더군요. 그 당시 우리 부부의 모습을 주변에서 봤다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임신 중인 아내를 울린 몹쓸 남편’으로 인식되었을 테지요.
무조건적인 이해를 하지 못해 무조건적인 대역죄인이 되는 그런 상황, 남편이 아내보다 덜 힘든 것일 수는 있겠지만 그걸 인지한다고 해서 제가 안 힘든 게 되지는 않더군요. 하룻밤 새고 피곤한 사람한테 일주일 잠 못 잔 사람 이야기 해준다고 해서 갑자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6월의 그날은 저도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전 진료까지는 아내가 듣기 좋아하는 말이 곧 저에게도 기쁨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내와 제가 일심동체가 아니었으니까요. 두 눈송이가 하나로 붙어오다가 그날 갑자기 쪼개져서 들어온 것이죠. 만약 그날 선생님이 아내 편만 들었다면 저는 너무 슬펐을 겁니다.
그리고 임신한 아내의 남편은 그냥 입 다물고 뇌를 비우라는 거냐며 다른 곳에 화풀이했을 수도 있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보듬는 쪽으로 세련되게 대답해주셨어요. 저에게, 남편도 아내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낯설고 충격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한밤중에라도 사오라든지, 아내가 힘들다고 하면 토 달지 말고 남편이 전부 다 하라든지, 남편의 무조건적인 협조를 강조하는 말만 들었어요. 맞는 말도 계속 들으면 반감이 생길 수 있는데, 제 마음 속의 엔진이 과열돼서 힘에 부칠 때쯤 선생님이 엔진오일을 갈아주신 듯한 느낌입니다. 네 번의 진료 모두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6월의 네 번째 진료가 특히 더 감사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을 뵐 날이 더욱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뱃속에서 아직 절반도 안 지냈으니까요. 만약 둘째가 생긴다면 선생님과의 인연은 더 오래 이어지겠지요. 앞으로 어느 정도가 될지 알 수 없는 긴 인연을 선생님과 맺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그 시간 동안 미리 감사합니다. 다음 검진 때는 더욱 밝아진 모습으로 아내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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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당선작 임○희 /
Ⅰ. 들어가며 – 임신과 출산, 그 명작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이 글은 한 여자의 남편이자 예비 아빠의 입장을 담았습니다. 산부인과 내원 당사자만이 아닌, 보호자가 보고 느낀 임신 전후의 세상을 그렸습니다.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프러포즈라는 거사(?)를 치른 이후로, 스·드·메라 일컫는 결혼식이나 그 후의 출산 준비 과정 전반에 걸쳐 ‘메인’이라 할 만한 주체는 거의 늘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눈을 사로잡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아내의 마음을 공략한 드레스로 버진 로드를 걸었으며, 출산에 대비한 산부인과 진료나 각종 서비스 선택도 아내의 취향과 여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산부인과 내원 또한 아내가 주연, 남편은 조연인 에피소드로 가득찰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보호자만이 절실히 보고 느끼게 되는, 단순히 넘기기에는 크고 소중한 산부인과 경험도 많다는 것을 (당연히 난생 처음) 실감하고 있습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아내와 손잡고 처음 산부인과 문을 두드렸던 2025년 봄부터 여름까지에 걸친, 남편이자 보호자의 경험을 스스로도 곱씹고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세상 그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받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두가(심지어 남편 본인조차도) 아내가 메인이라고 간주하는 출산 준비 과정을 슬기롭게 밟아 나가고자 하는 이 세상 모든 남편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Ⅱ. 산부인과 출석 0기 – 은밀히 시작된 인연
1. 한 번의 이별, 남겨진 이들의 상처
내가 아내와 손잡고 산부인과에 간 것은 올해 4월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산부인과 진료는 사실 그 전부터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로 숨기는 것 없이 살자고 약속했지만 임신만큼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남편에게조차 비밀로 하고 싶었나 보다. 나도 모르던 첫 번째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정확히는 왔다‘갔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 사실을 알게 된 과정은 우울하고 심각했다. 장거리 일정을 소화하던 어느 주말, 아내는 자신을 차로 데리러 오지 않고 지하철로 오라 한 것이 서운했다며 이 이야기를 덧붙였고, 나는 2배로 나쁜 놈이 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아내는 나 몰래 ‘얼리임테기’까지 사용하며 임신 여부를 체크하고 있었고, 2줄이 뜨자 혼자서 산부인과를 다녀왔다고 한다. 즉 비공식적으로는 이 때가 우리 가족의 첫 산부인과 내원인 셈이다. 아직 초음파로도 잡히지 않는 작고 소중한 생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며칠 뒤 다시 보아야 한다는 의사 소견에 벅찬 마음으로 다음 진료를 기다린 아내였으나, 돌아온 것은 ‘화학적 유산’이라는 결과였다.
아내는 이 모든 이야기를,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차로 데리러 오지 않았냐고 따지는 맥락에서 전달했고 그 직후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침울한 분위기를 감내해야 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우리의 첫 번째 아이는 그렇게 떠나갔고, 아내는 혹여나 같은 슬픔이 되풀이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한동안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2. 두 번째 인연, 모든 게 처음인 부부는 한없이 두렵다
다행히 아내의 걱정은 또 다른 설렘으로 덮어졌다.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는 소식은 이번에도 나에게 다소 늦게 전달되었다. 이전의 아픔을 겪은 아내는 더더욱, 뱃속에 아이가 자리했다는 그린 라이트를 확보한 다음에야 나에게 알리고 싶었나 보다.
내가 접한 첫 소식은 산부인과에서 찍어준 초음파 사진과 함께였다. 처음 보는 초음파 사진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흑백사진에 불과했지만, 가슴이 벅차오르기에는 충분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산부인과가 벌써부터 익숙하게 느껴졌다. 비록 나는 없었어도 우리 아기가 엄마와 같이 몇 번이고 드나들었을 산부인과 일정이 나에게도 손짓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겠지만, 백 퍼센트 슬프거나 기쁘기만 하기보다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아기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지금부터 펼쳐지는 모든 경험이 난생 처음이라는 막연함이 가져오는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상 스·드·메 2탄이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정보를 얻기는 쉽지만 그 무수한 정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강박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결코 동시에 다 이룰 수 없는 수많은 선택지들이 저마다 ‘이걸 꼭 해야 돼요, 안 하면 후회하더라고요’라며 손을 들고 있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이라는 이유로 긴가민가 하면서도 세간의 취향을 소신껏 걸러내기 어려웠는데, 이번엔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선택의 미로에 선 것이다.
이런저런 검사에 난생 처음 보는 준비물들, 아직도 모르면 거의 바보취급 당한다는 수많은 혜택들(인지 숙제인지 모를 것)…, 진짜로 꼭 필요한 건지 모르겠는데 한번 봐버린 이상 안 하긴 또 찝찝한 선택지 사이에서 헤엄쳐야 하는 상황, 열심히 보고 들을수록 역으로 점점 바보가 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Ⅲ. 산부인과 출석 1기 – 섬세하게 따뜻한 하이터치(High Touch)의 축복
1. 의사라서 기대고 싶지만, 의사이기에 어려운 휴머니즘
나는 남들에 비해 병원을 더 많이 두려워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스스로 병원을 찾지는 않는 성격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특유의 예민하고 감성적인 성향 탓에 의사의 무미건조한 진료로 혼자서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병원을 찾을 때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지고 위축되게 마련이다.
안 좋은 쪽으로 평상시와 다른 내 몸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의사들은 얼마나 힘드시겠냐는 공감성 멘트는 거의 하지 않고 (대체로 시선도 환자를 향하기보다는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약을 얼마간 얼마큼 드시라, 다음 진료는 이때쯤으로 하겠다 등의 정보만 간결하게 통보한다. 수십 분을 기다려서 겨우 만나게 된 의사의 진료가 이렇게 2분 만에 끝나고 나면 가끔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허탈감이 불현듯 밀려오곤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비록 무미건조한 진료에 상처받지 않을 만큼 강철 멘탈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간 내가 만난 의사들이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로서는 한 명 한 명의 환자에게 크게 몰입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의사도 사람이니 체력이나 정신력의 한계가 있을 것이고, 이번 환자에 대한 각별한 공감과 배려는 3시간 후 찾아오는 다른 환자에게 쏟을 에너지를 미리 당겨 쓰는 것과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환자 한 명만을 돌보는 세상이라면 몰라도, 갈 때마다 내 앞뒤로 환자 수십 명이 줄서 있는 병원을 지키는 의사는 모두를 돌보기 위해 역으로 모두에게 건조하게 되는 길을 골랐을 것이다.
환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알 의사가 따스한 휴머니즘을 발휘할 줄 모를 리는 만무하고(아마 잘 아는 만큼 이해의 폭도 넓겠지만) 나만의 의사가 아닌 모두의 의사이다 보니 역으로 휴머니즘과 거리를 두게 되나 보다. 나처럼 마음이 여린 사람에게는 조금 불리한(?) 여건이다.
2. 다행, 그리고 감사
그렇기에 산부인과 내원 또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자신의 몸 상태, 뱃속의 아이를 위해 하면 안 되는 것과 해도 되는 것(혹은 해야 하는 것) 등 의사쌤에게 물을 질문들을 미리 준비하고 검진 날짜만을 기다렸지만, 나는 경험에서 유추되는 의사의 무미건조하고 간결한 반응에 아내가 상처받을까 미리 걱정되었다.
내가 처음 동반한 진료 당일 대기실에 있는 동안 걱정은 더욱 커졌다. 미리 예약하고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손님이 너무 많아 우리 차례가 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예약한 시각보다 30분 이상 늦어졌음에도 아내의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았다.
나와 아내가 들어가게 될 진료실에는 내가 본 것만 해도 이미 10명이 넘는 환자가 드나들었다. 마침내 아내의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퀭한 눈빛을 하고 한 번에 최소한의 체력만 쓰는 방향으로 숙련된 의사를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극단적으로는, 이미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의 비관은 기우였던 것 같다. 의사쌤의 첫인상은 우리가 오늘의 첫 손님인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자상한 모습이었다. ‘아기 상태는 어떻고, 몇 주 뒤에 오세요’ 정도만 이야기하고 바로 끝날 것 같았던 진료는 꽤나 장시간(!) 동안 친절하고 자세하게 이루어졌다. 아내는 다른 사람에 비해 질문이 많은 편인데, 의사쌤은 그 세세한 질문들에 귀찮은 티 내지 않고 답변해주셨다. 체력과 시간에 쫓겨 진료 회전율을 높이려 하는 듯한 내 경험 속 다른 의사들과는 분명 온도차가 있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후반부를 보면 항암치료 중인 남편 관식을 어떻게든 호전시켜 보고자 애쓰는 애순의 절실함이 묘사되는데, 애달프고 다급한 애순과는 달리 의사를 포함한 관계자들은 병원의 규칙에 쉽사리 맞추지 못하는 애순에게 냉담할 뿐이다. 치료에 좋은 걸 전부 해보고자 이것저것 물어보려는 애순에게 ‘인터넷에 나오는 거 다 물어보실 거냐’며 말문을 잘라버리는 의사의 매정함은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묘사된 의사의 모습은 조금 과장됐을지언정 내 머릿속에 있던 의사의 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를 보고 감정이입이 되어서였을까, 의사쌤의 친절한 진료가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예상에 없던 선의를 받아서인지 두 배로 감동적이었다.
3. 훈수와 하이터치(High Touch)는 한 끗 차이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간 것은 지금까지 4번, 아내 혼자서 선생님을 만났던 것까지 합친다면 이미 열 번 정도이다. 산부인과는 나의 자동차가 주요 목적지로 자동 설정할 만큼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출산할 때까지 보면 지금보다 배 이상 진료를 보게 될 것이다.
연인도 오래 사귀면 서로가 변했다며 서운해하는 경우가 있듯이, 처음에 좋았던 진료 스타일도 회를 거듭할수록 불친절해지거나 건성으로 바뀌는 것을 아닐지 걱정이 되었었다. 다행히도 의사쌤은 한결같았다.
4월에 처음 느꼈던 따뜻하고 친절한 진료가 6월이 되어도 여전히 푸근하고 폭신했다. 처음에는 유일한 환자를 대하는 것처럼 집중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여러 질문에도 알기 쉽게 답해주는 의사쌤의 열정에 감사했는데, 지금은 그 열정이 시간이 흘러도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불타오름에 감사하다.
그런데 어느 잠 못 이루는 밤에 무심코 생각해보니, 내가 감사할 이유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의사쌤은 단순히 친절한 게 아니라, ‘섬세하게’ 친절했기에 나와 아내의 마음이 더욱 편안할 수 있었다. 무대를 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꿔보면, 무심함의 정 반대 끝에 있는 훈수와 잔소리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도 많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돈 아껴야지 등등 (실제로 유형의 지원을 해줄 것도 아니면서) 과도하게 잔소리하는 친척들 때문에 짜증났다는 이야기는 종종 회자된다. 즐겁게 놀자고 모인 여행지에서 숙소 편의시설이 아쉽다거나, 관광 콘텐츠가 너무 단편적이라는 등등 자기가 일정 짜면 이렇게 안 했을 거라는 식으로 김새는 발언을 하는 빌런들 이야기도 인터넷상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에 짜증을 느끼는 이유는 상대가 관심을 너무 억세고 부담스럽게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의사쌤이 나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출산 준비 팁을 자기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쭉 풀면서 왜 이런 것들을 준비 안하셨냐, 지금이라도 당장 하시라는 식으로 진료했다면? 이것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한시라도 빨리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무심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훈수 모드로 가지도 않고 적정선에서, 섬세하게 따뜻한 정을 베풀며 환자와 보호자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의사쌤을 담당의로 만났다. 그 덕에 출산과 육아라는, 막연하고 걱정스러운 앞길을 그래도 걸어볼 만한 길이라 생각할 힘이 생긴다.
적정선을 지키는 휴머니즘은 상대를 가슴 깊이 배려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관심이 없으면 기계처럼 말하게 되고, 관심이 조금 있지만 깊게 발 들이기 싫으면 가공되지 않은 여기저기의 정보를 백화점식으로 털어놓고 만다. 말하는 입장이 아니라 듣는 입장까지 생각한다면 무심코 백화점식으로 털어놓기만 할 수도, 그렇다고 무심하게 지나칠 수도 없게 된다. 셰프의 피땀이 깃든 요리처럼, 할 말을 갈고 닦아서 조심스럽고 진정성 있는 휴머니즘으로 만들어 내놓는다. 이런 하이터치(High Touch)는 가족끼리도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소통인데, 그 흔하지 않은 하이터치를 산부인과 의사쌤에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Ⅳ. 나가며 – 의사 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우리 아기가 7주차‧9주차‧12주차‧16주차일 때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던 초보 남편 겸 예비 아빠입니다. 선생님은 아마 제가 누군지 기억하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선생님의 pc 모니터 바로 뒤에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았고, 진료 내내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제 아내가 얼리임테기를 들고 남몰래 기대했다가 좌절했던 그 시절, 선생님은 이미 아내의 슬픔과 고민을 함께해주셨습니다. 저와 선생님의 첫 만남은 지난 4월이었지만, 그간 아내가 지나가듯이 이야기하던 임신 꿀팁의 90퍼센트 이상은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비롯한 것이더군요. 혼자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다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을 아내를 잘 보듬어주시고 이어서 건강한 아이가 깃들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어쩌면 저를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6월에 선생님을 찾았을 때, 아내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셨고, 아내는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며 저를 당황시켰죠. 심지어 진료 막바지에 선생님이 궁금한 거 있냐고 하시자, 아내는 또 다시 저를 가리키며 “아내한테 잘하라고 말 좀 해주세요”라고 강력 건의(?)했지요.
남편으로서 이런 상황은 참 어렵습니다. 뱃속에 아이를 품고 온갖 몸고생‧마음고생하는 당사자가 아내니까, 그런 아내의 불안정한 정서변화나 갑작스러운 짜증에 너무 동요하지 말고 최대한 맞춰줘야 한다는 걸 알아도 실천하기가 참 고되더군요. 그 당시 우리 부부의 모습을 주변에서 봤다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임신 중인 아내를 울린 몹쓸 남편’으로 인식되었을 테지요.
무조건적인 이해를 하지 못해 무조건적인 대역죄인이 되는 그런 상황, 남편이 아내보다 덜 힘든 것일 수는 있겠지만 그걸 인지한다고 해서 제가 안 힘든 게 되지는 않더군요. 하룻밤 새고 피곤한 사람한테 일주일 잠 못 잔 사람 이야기 해준다고 해서 갑자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6월의 그날은 저도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전 진료까지는 아내가 듣기 좋아하는 말이 곧 저에게도 기쁨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내와 제가 일심동체가 아니었으니까요. 두 눈송이가 하나로 붙어오다가 그날 갑자기 쪼개져서 들어온 것이죠. 만약 그날 선생님이 아내 편만 들었다면 저는 너무 슬펐을 겁니다.
그리고 임신한 아내의 남편은 그냥 입 다물고 뇌를 비우라는 거냐며 다른 곳에 화풀이했을 수도 있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보듬는 쪽으로 세련되게 대답해주셨어요. 저에게, 남편도 아내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낯설고 충격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한밤중에라도 사오라든지, 아내가 힘들다고 하면 토 달지 말고 남편이 전부 다 하라든지, 남편의 무조건적인 협조를 강조하는 말만 들었어요. 맞는 말도 계속 들으면 반감이 생길 수 있는데, 제 마음 속의 엔진이 과열돼서 힘에 부칠 때쯤 선생님이 엔진오일을 갈아주신 듯한 느낌입니다. 네 번의 진료 모두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6월의 네 번째 진료가 특히 더 감사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을 뵐 날이 더욱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뱃속에서 아직 절반도 안 지냈으니까요. 만약 둘째가 생긴다면 선생님과의 인연은 더 오래 이어지겠지요. 앞으로 어느 정도가 될지 알 수 없는 긴 인연을 선생님과 맺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그 시간 동안 미리 감사합니다. 다음 검진 때는 더욱 밝아진 모습으로 아내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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